익선동에 대한 Tmi 4가지


익선동에 대한 Tmi 4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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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개발업자 정세권은 일본인의 진출에 맞서 조선인을 위한 근대 한옥(=도시형 한옥)을 대규모로 보급했다

근대 한옥은 1929년 철종의 아버지 전계대원군의 사저였던 누동궁 터(익선동 166번지)를 개발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정세권은 익선동에서의 실험과 그 성공을 발판으로 가회동, 삼청동에 한옥단지를 만들었는데, 이 한옥단지들이 지금의 북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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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과 달리 익선동은 설계 단계부터 서민을 위한 주거단지로 기획되었다

정세권은 필지를 15평 단위로 쪼개어 저렴한 가격에 대량 분양하여, 최대한 많은 가구가 입주할 수 있도록 공간 효율을 극대화했다.

오늘날 익선동을 방문했을 때 미로처럼 다닥다닥 붙은 집들과 북촌에 비해 유난히 낮고 좁은 골목길을 마주하게 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설계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Tmi) 익선동은 골목이 비좁아 연인과 어깨를 부딪히며 스킨십하기 좋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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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3대 요정집이었던 오진암 건물을 부암동에 옮겨 지은 무계원

3. 1950~70년대 익선동은 고급 환락가였으며 막후정치의 중심이었다

익선동에는 고급 윤락업소인 요정집들이 밀집되어 있었는데 이는 50~70년대 막후 정치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요정집들은 2010년대 초반 모두 사라졌으나 오진암의 건물은 부암동으로 옮겨 전통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4. 익선동은 2000년대 철거, 재개발 대상이었다

하지만 2010년 도시계획위원회가 재개발에 제동을 걸었고, 2014년 이후 카페 거리가 조성되기 시작하면서 한옥을 보전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참고 :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1/27/2013112702044.html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1/27/2013112702044.html https://kookbang.dema.mil.kr/newsWeb/m/20251128/1/ATCE_CTGR_0020020024/view.do?nav=0&nav2=0

https://www.yna.co.kr/view/AKR20100915228200004

https://www.yna.co.kr/view/AKR20100915228200004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264769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264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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