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파형 동검은 고조선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요약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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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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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파형 동검.


비파형 동검이란, 검신의 윤곽이 비파를 닮은 곡선형을 이루며 주로 청동기 말기에서 초기 철기 전환기에 제작·사용된 동검 유형을 말합니다.

비파형 동검은 오랫동안 고조선의 대표적인 물질문화, 나아가 고조선의 전유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비파형 동검의 주요 분포 지역이 요동과 한반도 서북부에 집중되어 있고, 그 사용 시기가 고조선이 문헌에 등장하는 시기와 대체로 겹친다는 점에서 형성되었습니다.

아울러 비파형 동검은 일반 취락 유적보다 무덤, 특히 부장품이 집중된 상위 위계의 묘제에서 주로 확인되어 왔으며, 이러한 출토 맥락은 비파형 동검을 권위와 위상을 상징하는 유물로 인식하게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돌널무덤·돌무지무덤 등 위계가 분명한 묘제에서 거울·방울·창끝 등 다른 위세 재화와 함께 부장되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확인됩니다.

또한 고조선 연구에서 문헌 자료의 제약으로 인해 고고학 자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점 역시, 비파형 동검을 고조선의 핵심 표식으로 인식하게 만든 중요한 배경이었습니다.

그 결과 비파형 동검과 고조선은 오랫동안 거의 자동적으로 결부되어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요서·요동 지역 청동기 문화의 단계적 전개와 비파형 동검의 분포·사용 양상이 보다 정밀하게 밝혀지면서, 이를 단일 정치체의 전유물로 이해하는 관점에는 재검토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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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동단검문화 형성 단계 요동지역의 지역문화와 주요 유적(이후석, 2021).

비파형 동검의 기원 문제는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초기에는 이를 중원 청동기문화나 북방 초원계 금속기 전통의 직접적인 파생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축적된 고고학 자료는 이러한 단선적 기원론이 비파형 동검의 형성과 전개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예컨대 요동 지역에서는 전기 단계의 서로 다른 비파형 동검 형식이 공존하거나 동일 유적에서 함께 출토되는 사례가 확인되며, 이는 하나의 완성된 형식이 단선적으로 확산되었다기보다 지역별 변형과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었음을 시사합니다.

동일한 기본 형식이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확인되면서도 병부 구조·검신 비례·주조 세부에서 상이한 변이를 보이기 때문에, 하나의 중심지에서 완성된 형식이 일방적으로 확산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현재의 연구 성과를 종합하면, 비파형 동검은 단일 지역에서 완성된 형태가 일방적으로 확산된 결과라기보다, 요서·요동을 중심으로 한 접경 지역에서 서로 다른 청동기 제작 전통과 기술 요소가 장기간 상호작용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된 유물 유형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타당합니다.

북방 초원 지역의 금속기 제작 전통, 중원 청동기문화의 기술적 영향, 그리고 요서·요동 지역의 토착적 제작 관행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비파형 동검이라는 독특한 형식이 점진적으로 정착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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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동지역 비파형동검의 주요 형식(이후석, 2021).

또한 비파형 동검은 초기 단계부터 이미 지역적 변이를 동반하고 있으며, 일정한 형태적 공통성을 유지하면서도 세부 제작 방식과 사용 맥락에서는 차이를 보입니다.

이는 여러 지역의 제작 집단이 공통된 기술적·문화적 틀을 공유하되, 출토 자료에서는 지역에 따라 검신 비례·병부 구조·주조 세부가 달라 단일 중심지의 표준화된 제품이 일방적으로 확산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형식적 다양성은 전통적으로 비파형 동검을 A형과 B형으로 구분하여 설명해 왔는데, 이는 검신 비례와 병부 구조의 차이를 정리하기 위한 형태 분류로서 연구상 유효하되, 단독 기준으로 연대나 특정 정치체를 확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지적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비파형 동검의 기원은 ‘한 곳에서의 발명’이 아니라, 광역적 기술·문화 교류의 산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 연, 동호, 조선 등의 공존(자작지도),

요서 지역은 전통적으로 고조선의 서방 활동 무대 중 하나로 주목되어 왔으나, 동시에 이 지역에는 고조선만이 존재했던 것이 아닙니다.

문헌과 고고학 자료를 종합하면, 당시 요서 일대에는 동호(東胡), 산융(山戎) 등 서로 다른 계통의 부족 집단들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이 점은 고고학적으로도 확인됩니다.

대표적으로 하가점 상층문화* 유적군에서는 비파형 동검이 반복적으로 출토되고 있으며, 이들 유적은 일반적으로 고조선계 정치체로만 단정되기 어려운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만 이는 고조선과의 교류나 영향 관계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의미는 아니며, 정치적 귀속과 문화적 공유를 구분한 상태에서 비파형 동검을 매개로 한 광역적 상호작용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가점 상층문화는 북방 초원계 요소와 요서 지역 토착 문화가 결합된 양상을 보이며, 묘제·주거지·토기 구성에서도 고조선 중심지로 추정되는 요동·서북한 지역과는 일정한 차이를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유적에서 비파형 동검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비파형 동검이 특정 종족이나 정치체의 배타적 상징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정치 집단들이 공유한 권위·의례·교류의 매개물이었음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동시에 하가점 상층문화에서 비파형 동검은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나, 해당 문화 전체를 대표하는 단일 표지로 환원되지는 않는다는 점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당 지역의 자료를 종합하면, 비파형 동검의 사용 양상은 지역과 문화권에 따라 차이를 보입니다.

하가점 상층문화권과 같이 북방 초원계 요소가 강한 지역에서는 비파형 동검이 출토 빈도와 맥락에서 차이를 보이는 반면, 십이대영자문화권과 요동·서북한 지역에서는 비파형 동검이 보다 안정적으로 제작·사용된 양상이 확인됩니다.

이는 비파형 동검이 특정 종족의 전유물이기보다, 각 정치 집단이 자신의 사회적·문화적 맥락에 따라 선택적으로 활용한 상징적 무기였음을 시사합니다.

즉 비파형 동검은 고조선의 존재를 부정하는 증거가 아니라, 고조선을 포함한 복수의 정치 세력이 공통된 상징 체계와 표현 방식을 공유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하가점 상층문화는 요서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청동기 문화로, 기마·유목적 요소와 정착 농경 요소가 혼재된 북방계 접경 문화로 이해됩니다.

이와 같은 분포와 사용 양상을 고려할 때, 비파형 동검문화는 전통적인 의미의 ‘고고학 문화’, 즉 특정 종족이나 국가와 일대일로 대응되는 개념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최근 연구에서는 비파형 동검문화를 여러 지역과 정치 집단이 참여한 광역 문화권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강화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광역 문화권’은 특정 정치체의 지배 범위라기보다, 유사한 기술과 상징 체계가 여러 지역에서 공유된 범위를 의미합니다.

이 관점에서 비파형 동검은 단순한 무기나 장신구가 아니라, 청동기 제작 기술의 전승과 공유, 사회적 위상과 위세, 지배력을 표현하는 방식, 그리고 장거리 교류망 속에서 이루어진 상호작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로 이해됩니다.

동일한 비파형 동검이라 하더라도, 고조선·산융·동호 등 각 집단의 사회적 맥락에 따라 그 의미와 사용 방식은 달랐을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비파형 동검문화는 균질한 문화라기보다는, 공통 요소와 지역적 변이가 공존하는 유동적인 문화권으로 파악하는 것이 보다 타당합니다.

▲ 세형동검. ⓒ국립중앙박물관.

비파형 동검문화는 이후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방향으로 변용되며 전개됩니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와 일부 만주 지역에서는 검신이 가늘고 직선적인 세형동검이 등장하는데, 이는 비파형 동검이 일괄적으로 대체되었다기보다 광역 문화권 내부에서 지역별 선택과 재구성이 이루어진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세형동검은 형태상 차이를 보이지만, 제작 기술과 사회적 사용 맥락에서는 일정한 연속성이 확인되며, 이는 비파형 동검문화가 청동기 말기에서 초기 철기 시기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단절이 아니라 변형을 거쳐 이어졌음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정치체의 단절을 의미하기보다, 기존 문화권 내부에서의 기술적·상징적 재편으로 이해됩니다.

비파형 동검은 중국 내지에서 발전한 동검 계통, 즉 춘추·전국 시기 중원 지역에서 보편화된 청동검과 비교할 때 형태와 제작 기법 양면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중국식 동검이 일반적으로 검신과 자루를 한꺼번에 주조한 일체형 구조를 취하는 데 비해, 비파형 동검은 검신과 자루를 분리하여 제작한 뒤 이를 결합하는 조립식 구조를 특징으로 합니다.

이러한 제작 방식의 차이는 칼몸과 검병의 결합 방식, 단면 구조, 전체적인 비례에서도 드러나며, 장식과 세부 마감에서도 중원 계통 동검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특징이 확인됩니다.

이러한 차이는 비파형 동검이 중국 청동기문화의 단순한 변형이나 주변부 모방이 아니라, 서로 다른 기술적 전통과 제작 관행 속에서 형성된 유물 유형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또한 비파형 동검은 기능적 사용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으나, 출토 맥락과 부장 양상을 고려할 때 일상적 전투 무기라기보다 사회적 위상과 권위를 상징하는 성격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이는 비파형 동검문화가 중원 청동기문화와는 다른 사회적·의례적 맥락 속에서 전개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비파형 동검이 여러 정치 세력에 의해 공유된 문화 요소였다는 점을 전제로 할 때, 비파형 동검이 고조선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고 해서, 고조선과의 관계 자체가 약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중요한 질문은, 이 광역적 문화권 속에서 고조선이 어떤 위치를 차지했는가에 있습니다.

문헌에 등장하는 고조선의 활동 시기와 비파형 동검의 주요 사용 시기는 상당 부분 중첩되며, 요동과 한반도 서북부 일대에서는 비파형 동검과 함께 사회적 위계와 권력 집중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지표들이 반복적으로 확인됩니다.

이는 고조선이 비파형 동검문화권 내부에서 주변적 존재가 아니라, 일정한 정치적 중심성을 가진 주체였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다만 이러한 중심성은 배타적 독점과 동일한 개념은 아닙니다.

고조선은 산융·동호 등과 함께 이 문화권을 구성한 여러 주체 가운데 하나였으며, 그중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정치체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설득력이 있습니다.

▲ 부여 송국리 1호 돌널무덤 출토품 일괄, 부여 송국리 유적, 청동기시대, 길이 33.4㎝ (동검) -왼쪽, 부여 송국리 1호 돌널무덤 모습

비파형 동검은 고조선의 중요한 물질문화 요소였음은 분명합니다.

다만 이를 곧바로 단일 정치체의 독점적 표지로 환원하기는 어렵습니다.

비파형 동검은 요서와 요동, 내몽골 동남부와 화북 일부 지역, 한반도 전역, 나아가 제주 일부 지역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광역적 상호작용 속에서 고조선, 산융, 동호 등 여러 정치 세력과 지역 사회가 공유한 상징적 유물이었습니다.

따라서 비파형 동검을 통해 고조선을 이해한다는 것은, 특정 유물을 특정 국가에 귀속시키는 작업이 아니라, 고조선이 참여했던 교류와 네트워크의 범위, 그리고 그 속에서 차지했던 위치를 복원하는 작업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비파형 동검은 고조선을 축소시키는 자료가 아니라, 오히려 고조선을 동북아 고대 세계 속에 보다 입체적으로 위치시키는 핵심 자료라 할 수 있습니다.

비파형 동검은 청동기에 형성된 동검 유형으로, 오랫동안 고조선의 대표적인 물질문화이자 전유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요서·요동 지역을 중심으로 한 고고학 자료의 축적은, 비파형 동검이 단일 정치체에서 발명되어 일방적으로 확산된 유물이 아니라 여러 지역의 제작 전통과 기술 요소가 장기간 상호작용하며 형성된 결과물임을 보여줍니다.

비파형 동검은 하가점 상층문화를 포함한 다양한 정치·문화 집단에서 공유되었으며, 특정 종족이나 국가의 배타적 상징물로 환원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비파형 동검문화는 특정 국가와 일대일로 대응되는 고고학 문화라기보다, 공통된 기술과 상징 체계를 공유한 광역 문화권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동과 한반도 서북부 일대에서 확인되는 출토 맥락과 위세 재화의 결합 양상은, 고조선이 이 문화권 내부에서 중요한 정치적 중심 가운데 하나였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비파형 동검은 고조선을 부정하거나 축소하는 자료가 아니라, 고조선을 동북아 고대 세계의 교류와 네트워크 속에서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해주는 핵심 자료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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